시기와 장소
고대 올림픽은 펠로폰네소스 서부 엘리스 지방의 올림피아에서 열렸어요. 전통적인 시작 연도는 기원전 776년이고, 끝은 기독교를 믿던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 제전을 금지한 서기 393년으로 봐요. 1,170년 동안 293번의 올림피아드가 치러진 셈이에요.
올림피아는 도시가 아니라 제우스의 성역이었어요. 신전과 보물창고, 운동 시설이 모여 있었죠. 이 경기는 델포이의 피티아 제전, 코린토스의 이스트미아 제전, 네메아의 네메아 제전과 함께 4대 범그리스 제전으로 꼽혔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제전으로 여겨진 올림피아의 위상이 가장 높았어요.
종교가 먼저였어요
경기는 올림포스의 제우스 숭배와 떼어놓을 수 없었어요. 첫날에는 맹세와 제사, 의식이 이어졌어요. 가장 중요한 제사인 제우스 대제단에 소 100마리를 바치는 의식은 제전 한가운데인 사흘째에 열렸죠. 선수들은 제단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루겠다고 맹세했어요. 규칙을 어긴 선수는 벌금으로 자네스라는 조각상을 세워야 했어요. 이 조각상들은 경기장 입구를 따라 늘어서 있었고, 저지른 잘못이 새겨져 있었어요.
운동 경기는 제전의 일부일 뿐이었어요. 올림피아에서는 연회와 행렬, 제사, 신탁 문의, 장터도 함께 열렸어요. 여행하는 철학자와 시인, 소피스트들이 찾아와 공개 강연을 하고 작품을 낭독했고요. 헤로도토스가 이곳에서 자신의 역사를 소리 내어 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경기 종목
스타디온
가장 오래된 종목으로, 1스타디온을 달리는 단거리 경주예요. 올림피아에서는 약 192m였어요. 우승자가 워낙 유명해서 그 이름으로 올림피아드를 가리킬 정도였죠.
디아울로스와 돌리코스
디아울로스는 약 384m를 왕복하는 경주이고, 돌리코스는 7~9스타디온, 대략 4,500m를 달리는 장거리 경주예요.
5종 경기
스타디온,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레슬링까지 다섯 종목이에요. 전천후 능력을 이상으로 삼았던 그리스인의 가치관이 담겨 있죠.
레슬링, 권투, 판크라티온
레슬링과 권투, 그리고 규칙이 거의 없는 격투 종목이에요. 눈을 찌르는 것과 물어뜯는 것만 금지였고, 나머지 공격은 대부분 허용됐어요. 몹시 거친 종목이라 사망 사고도 기록에 남아 있어요.
말과 전차 경기
말 네 마리 또는 두 마리가 끄는 전차 경주와 경마가 있었어요. 우승자로 인정받는 사람은 기수나 전차 몰이꾼이 아니라 말의 소유주였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우승을 휩쓸었어요.
호플리토드로모스
투구, 방패, 정강이받이를 갖추고 달리는 무장 경주예요.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추가됐고, 군사적 대비 태세라는 이상을 보여 줬어요.
상품
올리브 관
공식적으로 우승자가 받는 것은 올림피아의 신성한 숲에서 잘라 낸 야생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 코티노스와 종려나무 가지뿐이었어요. 메달도, 2등 상도 없었죠. 실질적인 보상은 우승자의 고향 도시에서 나왔어요. 공적인 영예, 올림피아나 고향에 세우는 조각상, 프리타네이온에서의 무료 식사, 세금 감면, 때로는 상금까지 받았거든요. 예를 들어 아테네는 올림픽 우승자에게 500드라크마를 줬어요. 스포츠가 명예와 경제적 이익을 함께 가져다줬고, 전문 선수도 이미 있었다는 뜻이에요.
누가 출전할 수 있었을까
- 자유로운 그리스인 남성만 출전할 수 있었어요. 노예, 여성,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은 제외됐어요.
- 그리스인임을 증명해야 했어요. 예를 들어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기원전 5세기 알렉산드로스 1세의 경우처럼 자신이 그리스인임을 입증해야 했어요.
- 로마인은 나중에 받아들여졌어요. 헬레니즘화된 세계의 일부가 된 뒤였죠. 네로는 서기 67년에 터무니없게도 직접 출전했고, 전차에서 떨어졌는데도 우승자로 선언됐어요.
- 기혼 여성은 관람이 금지됐어요. 어기면 티파이온 산에서 던져 버린다는 유명한 경고가 있었죠. 미혼 여성과 처녀는 입장할 수 있었어요.
- 말과 전차 경기의 우승은 소유주의 몫이었어요. 기수나 전차 몰이꾼이 아니었기에, 여성도 소유주 자격으로 "우승"할 수 있었죠. 스파르타의 공주 키니스카가 기원전 396년과 392년에 우승해 최초의 여성 우승자가 됐어요.
- 준비 기간이 있었어요. 선수들은 가까운 엘리스에서 30일 동안 공식 감독을 받으며 훈련했고, 이 과정에서 탈락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알몸에 기름을 바르고
- 선수들은 알몸으로 겨뤘어요. "김나시온(체육관)"이라는 말 자체가 알몸 운동에서 나왔어요. 허리에 두르던 천을 벗게 된 시기는 보통 기원전 720년경으로 봐요.
- 기름 바른 몸: 선수들은 경기 전에 올리브유를 온몸에 바르고, 레슬링에서 손에 힘이 잘 들어가도록 흙먼지를 덧바르기도 했어요.
- 스트리길: 경기가 끝나면 기름과 땀, 먼지를 긁어내는 데 쓰던 휜 청동 도구예요.
한눈에 보기
기원전 776년
전통적으로 보는 시작 연도예요. 기록에 남은 최초의 우승자는 스타디온에서 이긴 엘리스의 코로이보스예요.
서기 393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금지하면서 1,170년의 전통이 막을 내렸어요.
~40-50,000
올림피아 경기장의 추정 수용 인원이에요. 관중들은 성역 곳곳에서 야영을 했어요.
올리브 관
유일한 공식 상품이에요. 물질적인 보상은 우승자의 고향 도시에서 나왔어요.
신성한 휴전
휴전의 진실
에케케이리아는 매 대회에 앞서 선포됐고, 길을 떠나는 선수와 관중을 위한 것이었어요. 올림피아를 오가는 길의 안전을 보장했죠. 전쟁을 전반적으로 멈추자는 뜻은 아니었어요. 전쟁은 계속될 수 있었지만, 성역으로 가는 길만큼은 중립을 지키기로 한 거예요. 위반 사례도 있었어요. 스파르타는 휴전을 어겼다는 이유로 기원전 420년에 출전이 금지됐어요. 1992년에 되살린 오늘날의 올림픽 휴전은 이 개념을 기리는 상징적 행사이고, 끊김 없이 이어져 온 전통은 아니에요.
유명한 우승자들
- 크로톤의 밀로(기원전 6세기경): 레슬링에서 여섯 번 우승했어요. 네 살짜리 황소를 짊어지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는 식의 과장된 괴력 이야기가 전해져요.
- 로도스의 디아고라스: 권투 선수로, 아들과 손자도 우승했어요.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우승한 아들들이 그를 어깨에 태우자 기쁨을 못 이기고 숨을 거뒀다고 해요.
- 로도스의 레오니다스(기원전 164~152년): 네 번의 올림피아드에 걸쳐 달리기 세 종목에서 12번 우승했어요. 이 기록은 오늘날 올림픽의 업적과 자주 비교돼요.
- 스파르타의 키니스카: 전차 소유주로서 우승한 최초의 여성 "우승자"예요(기원전 396년).
- 타소스의 테아게네스: 고대 문헌에 따르면 그리스 각지의 제전에서 1,300번 우승했다고 해요.
경기의 종말
- 로마 시대: 경기는 이어졌고, 로마인과 그리스인이 아닌 관중이 점점 늘었어요.
- 쇠퇴: 시간이 흐르면서 옛 종교적 권위가 약해졌고, 제전의 성격도 달라졌어요.
- 서기 393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 제전을 금지하면서 올림픽이 막을 내렸어요.
- 유적의 파괴: 테오도시우스 2세가 서기 426년에 신전을 파괴하라고 명령했어요. 이후 지진과 홍수로 성역은 차츰 땅속에 묻혔어요.
- 재발견: 18~19세기에 발굴이 이뤄지면서 올림피아는 다시 주목받게 됐어요.
근대 올림픽의 부활
-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고대의 모델과, 1859년·1870년·1875년에 열린 그리스의 "자파스 올림픽"에서 영감을 얻어 1896년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을 시작했어요.
- 1896년 아테네: 최초의 근대 올림픽은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칼리마르마로)에서 열렸어요. 첫 마라톤은 마라톤 전투의 기억에서 비롯됐죠.
- 올림픽 성화: 1928년에 생긴 전통이에요. 올림피아에서의 채화와 성화 봉송은 1936년에 시작됐어요.
-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아테네로 돌아왔고, 마라톤은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에서 끝났어요.
오늘날에도 경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
- 올림피아 고고학 유적(아테네에서 차로 약 4시간): 제우스 신전, 경기장,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보물창고, 유적 안의 박물관이 있어요.
-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제우스 신전의 박공 조각, 프락시텔레스의 헤르메스, 운동선수 조각상을 볼 수 있어요.
-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아테네):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열린 곳이에요. 전체가 대리석이고 일반에 개방돼 있어요.
- 국립고고학박물관(아테네): 올림피아 시대의 운동 관련 미술품과 유물이 있어요.
자주 묻는 질문
고대 올림픽은 정말 4년마다 열렸나요?
네. 지금의 올림픽과 같은 4년 주기였어요. 올림피아드 자체가 그리스인이 시간을 세는 방식이 되기도 했어요.
경기는 며칠 동안 열렸나요?
전성기에는 5일이었어요. 초기에는 더 짧았고, 나중에는 종목이 늘면서 길어졌어요.
선수들은 1년 내내 훈련했나요?
네. 주요 성역과 도시에는 전문 선수가 있었고, 식단과 훈련 프로그램, 코치까지 체계를 갖추고 있었어요.
부정행위는 없었나요?
뇌물과 규칙 위반이 실제로 기록에 남아 있어요. 벌금, 자네스 조각상 비용 납부, 출전 금지, 공개적인 망신이 처벌이었어요.
우승자는 정말 신처럼 대접받았나요?
신이라기보다 영웅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어요. 우승자에게는 조각상과 무료 식사, 세금 면제가 주어졌고, 어떤 도시에서는 성벽에 특별한 출입구까지 열어 줬어요.
지금도 올림피아를 방문할 수 있나요?
네. 올림피아는 중요한 박물관을 갖춘 대규모 고고학 유적이에요. 아테네에서 하루 일정으로 길게 다녀올 수도 있지만, 1박을 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고, 고대 경기장 위를 직접 걸어 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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